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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존재가 감정을 반사적으로 유발한다는 이론이 있다. 우리는 군중 속에 들어가는 순간 각성을 느낀다.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는 변연계가 다른 사람의 존재에 자동적으로 반응을 한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기본적인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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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분류하는 까닭은 낯선 사람을 볼 때 어디에 소속돼 있는지 알아야 대하기가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분류할 수 있으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아내느라 고된 정신적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뇌는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과거의 경험을 정리해서 미래의 만남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것은 처리의 부담을 줄이고 반응의 능률을 높이기 위한 진화적 적응이다. 누군가가 어디 소속인지를 확인하면 이제 그 집단을 위해 모아둔 고정관념이 가동되고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집단의 고정관념이 개인의 개성과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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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이 본래 선한 사람이며 나쁜 사람만 나쁜 짓을 저지른다고 믿는다. 이에 따라 개인이 자신의 도덕적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전제 하에 법체계가 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짐바르도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위 사람들의 영향력이 우리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한다고 한다. 자아가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핵심적인 도덕성도 주위 사람들에 의해 휘둘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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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힘을 생각한다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행해진 순응과 복종의 실험(스탠퍼드의 감옥 실험)에서 참가자들의 자신의 행동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짐바도르가 소개한 현실의 맹종 사례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알았다. 다만 여기에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자아의 착각에 따라 이들은 자신이 원했다면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었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행동을 직접 결정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동조하거나 권위의 인물을 따르기 위해서라고 둘러댄다. 이렇게 개운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자신의 행동을 사후에 정당화하려고 한다. 바로 인지부조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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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집단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방하지 않는다.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집단과 무관한 사람이 행동을 따라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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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향에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는 존재이다. 따라서 공정한 사람이 되려면 편견이 예외가 아니라 규범이고 타이펠 등이 주장하듯이 집단 심리의 본바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 좋다. 문제는 자아의 착각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외적 환경이 과거에 우리를 대부분 형성했고, 앞으로도 평생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지부조화가 통합된 자아의 믿음을 유지함으로써, 즉 자신의 존재를 이상화시킨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의 결점을 보지 못하게 계속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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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 대자연은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보다는 위험이 닥쳤을 때 느꼈던 감정을 기억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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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전기적 활동 패턴으로 저장된 정보가 불려나오면서 기억이 형성됐던 당시의 원래 패턴이 재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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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자신의 역사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이 독자적인 개인의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했다. 결국 자전적 기억이 자아의 규정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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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들은 낭만적인 파트너 역할을 할 때 가장 개방적이었고, 아르바이트생 역할을 할 때에는 가장 성실했으며, 친구 역할을 할 때는 가장 외향적이었다. 한편 학생일 때 동조성이 가장 떨어지고 신경성은 가장 높다고 평가했다.

이런 결과로 보건대 OCEAN 점수는 개개인의 한 역할에서는 믿을 만한 지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역할이 달라지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며 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매사에 철저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집에만 오면 엉망으로 어질러놓고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이 자아에게 미치는 이런 영향은 어디에서든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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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우리가 내면을 묘사하려고 기억을 불러오는 방식도 규정한다. 결국 내면은 선택적으로 처리되는 기억이다. 프레더릭 바틀렛은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구조는 상세한 기억이 모두 짜 맞춰지는 틀을 제공해 회상의 방법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우리가 자아의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떠올리는 기억조차도 우리가 속하는 집단에 의해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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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정말로 분리돼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극적인 사례가 최근 독일에서 있었다. 15년 동안 시각장애 진단을 받고 살았던 DID 환자가 심리치료를 받은 뒤 서서히 시력을 되찾았다. 처음에는 몇몇 인격만 시력을 되찾았고 다른 인격들은 여전히 앞을 보지 못했다. 환자가 속임수를 썼을까? 시각피질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한 자료를 보면 그렇지 않았다.

시각피질은 뇌에서 가장 먼저 가동되는 감각 처리 부위이다. 인격이 시력을 되찾았을 때는 이 부위의 활동이 정상적으로 돌아갔고 앞을 보지 못했을 때는 활동이 중단됐다. 다중인격을 만들어내는 뇌 부위가 시각피질의 활동을 껐다 켰다 했던 것이다. 이것은 믿음을 넘어서는 일이다. 앞을 못 본다고 그냥 믿는다고 해서 감각 처리 부위의 작동까지 중단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아와 인격 같은 복잡한 개념을 처리하는 뇌의 상층에서 작용하는 연결망이 뇌의 하층에서 일어나는 기본적인 입력 처리 중계망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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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공적 삶과 사적 삶을 오가며 '균형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 그녀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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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누르려고 할수록 충동은 더 강해진다. 이 또한 자아 고갈의 효과이다. 우리는 이런 충동에 승복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제력이 우리에게 있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이런 절제가 좌절감으로 쌓이면 우리가 피하려고 하는 바로 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권력자들이 극적으로 추락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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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원자의 비유를 확대하자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 서로 잘 연결될 때 더 힘을 받는다. 수적 우세에 따른 안전함과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면 위협에 훨씬 더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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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택은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도록 했지만 사람들이 불과 한 세대 전에 개발된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는 일에 더 빠지면서 목소리 톤이나 섬세한 얼굴 표정의 변화는 빠르게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상호작용의 신체성은 사라지고 있고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기술적 환경은 결국 집단에도 영향을 미쳐 우리의 자아의식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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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이 볼 때 서양 10대들의 문제는 우리가 이 연령대를 소외시켜 결국 자기들끼리 집단과 계층을 이루도록 내버려 둔 데서 찾아야 한다. 연합과 경쟁을 통해 얻은 인기로 서열을 만들고 또래의 시선에 맞춰 자존심을 확립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또래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나머지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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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과 조회 수는 여러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더 중요하다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해준다. 사람들은 주목받기를 원하며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는 바로 이런 보편적인 열망을 내보이는 곳이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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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수백 년 전까지도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러다가 책, 라디오, TV라는 낡은 매체가 등장했다. 인류의 역사를 24시간으로 압축한다면 이런 매체가 등장한 시점은 자정 21분 전이다. 이런 매체들은 마을에서 잡담을 나누는 것과는 양상이 달랐다. 양방향으로 흐르는 직접적인 소통과 달리 우리의 가정을 파고든 매체는 한 방향이었다. 우리는 뉴스를 읽고 라디오를 듣고 TV를 본다. 서로의 소통은 중단됐다. 코언은 이렇게 말한다. "TV는 전 세계의 청중을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을을 파괴했다."

그러다가 팀 버너스 리가 웹을 발명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경험이 열렸다. 앞서 말한 인류의 시계에 따르면 불과 자정 2초 전에 등장한 이런 새로운 매체는 훨씬 더 민주적이고 탈중심적이며 양방향적이다. 코언은 우리가 다시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인류 발달의 단계에 올라섰다고 믿는다. 이번에는 마을의 물리적 크기와 위치로 인한 제약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이 주장은 사실이겠지만 우리가 경계하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웹은 모닥불이나 정원의 담장과는 아주 다르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퇴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자아의식을 구성하는 방식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웹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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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에서 모든 사람에게 연결되면 삶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적절하게 걸러내기 위해 소프트웨어는 결국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소프트웨어를 탓할 순 없다. 실생활에서도 똑같은 필터가 작동된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가치와 의견을 가진 마음이 맞는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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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미 있는 교환을 나누는 사람에는 한계가 있다. 무한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모두에게 다 반응할 수는 없다. 광대한 소셜 네트워크 세계에서 소통이 유지되는 최적의 팔로워 수는 기껏 100명에서 200명 사이라고 한다. 페이스북에서도 평균적으로 친구가 130명이다. 왠지 친숙한 숫자가 아닌가? 영장류의 피질과 사회 집단의 크기를 측정했던 던바의 연구 결과와 비슷하다. 실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라는 가상공간에서도 우리의 사회적 행동은 비슷하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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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은 결국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집어삼킬 터이므로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이 보그 족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온라인의 자아와 오프라인의 자아를 무리 없이 오가는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핵심적인 자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착각인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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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합이 아니라 개인을 사랑하고 미워한다. 우리가 도덕성을 내팽겨치지 못하는 것은 그랬다가는 자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징벌과 칭찬은 자아를 형성하는 다수의 타인이 아닌 개인 위에 쌓이는 것이다. 운명을 통제하는 자아의 존재를 거부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행복하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산다. 자아의 착각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목적의식과 성취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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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살아가면서 영향을 받은 여러 요소들로 이뤄진 패턴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들을 하나씩 다 치우면 '여러분'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여러분은 여러 요소들이 서로 결합해 자아의식을 이루고 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삶의 기억과 경험이 여러분을 형성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억이 항상 믿을 만하지는 않아서 자아가 정확하거나 일관된 하나의 모습으로 구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아는 맥락에 따라 계속 바뀌고 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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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믿지만, 때로는 신중한 고려 없이 때로는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선택이 이뤄질 때가 많다. 우리는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으려고 집단의 의지에 기꺼이 순응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뇌이고 여기에서 자아의식이 생겨나므로 외부인의 시각에서 이런 은밀한 과정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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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부조화는 우리가 이루지 못한 목표를 계속 담아두지 않도록 보호하고, 긍정적인 착각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자유의지로 인해 칭찬과 비난을 하는 근거가 마련되고, 결정의 과정은 우리에게 통제의 착각을 안겨준다. 이런 인지적 착각들이 없다면 우리는 정말로 우리를 통제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복잡한 과정과 기제에 질식돼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착각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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